그랑사가, 주연을 맡은 성우들의 이야기
1월 26일 출시된 엔픽셀의 멀티플랫폼 MMORPG '그랑사가'에는 김영선, 시영준, 서유리, 박지윤 등 약 60여 명에 달하는 성우진이 참가하여 연기에 생동감을 더했다. 이에 본고에서는 소년 검사 '라스' 역을 맡은 김지율 성우와 기억을 잃은 정령사 '세리아드' 역의 송하림 성우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 드린다.
김지율 : 그랑사가에서 라스역을 맡은 투니버스 9기 김지율 성우다. 요괴워치 극장판의 서도영이라는 캐릭터로 데뷔했으며, 검은 요괴워치의 백멍이, 갓 오브 하이스쿨의 박일표, 넷플릭스 ‘힐다’라는 만화에서 알프르라는 꼬마요정 역할, 마도조사의 온영 역을 맡았다.
송하림 : 그랑사가에서 세리아드 역할을 맡은 대원방송 5기 송하림 성우다. 4월은 너의 거짓말 애니메이션의 아이자 나기, 페어리테일의 세이라, 호빵맨의 버터누나,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아펠리오스 등의 목소리를 맡았다.
●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있다면?
김지율 : 갓 오브 하이스쿨의 주인공 진노리와 박일표 두 캐릭터 모두 오디션을 봤는데 디렉터가 박일표 역할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나의 연기를 보면서 다양한 연기를 시도해보라는 격려를 했는데 이 때 처음으로 인정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직업이든 5-6년차가 되면 이 직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될 듯한데 나 또한 그런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격려를 들으니 나에게 가능성이 있으며, 이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송하림 : 맡고 있는 캐릭터 하나 하나가 소중하며, 지금 당장 맡고 있는 캐릭터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지금은 세리아드가 가장 소중하다.
● 성우가 되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또 성우가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김지율 : 고등학교 들어갈 때 쯤에 너무 좋아하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1년쯤 되니 할아버지 목소리가 잊혀진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투니버스를 많이 볼 때여서 가족들이 내 목소리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성우를 꿈꾸게 됐다. 내가 성우를 하면 내 목소리가 계속 남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우가 되려면... 배우도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지만 성우도 자기 관리를 못하면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목소리 관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또 목소리가 너무 많이 노출되면 듣는 청자들도 적응을 해 버리기 때문에 이미지 소모에도 신경 써야 한다.
송하림 :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동경의 대상이었고, 팬심에서 이런 직업이 있구나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내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꼈던 향수를 훗날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운 좋게 성우가 될 수 있었다. 성우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연기 경험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역할이나 잘 하는 역할만 하지 말고 못하는 역할도 해봐야 한다. 프로가 되면 어차피 해야 하는데 그 때 가서 프로의 이름으로 망신을 당하느니 나만의 데이터 베이스를 쌓는 것이 좋다.
● 세리아드와 라스 연기를 승락한 이유는? 어떤 부분에 흥미를 느껴 도전하게 되었는가?
김지율 : 처음엔 어떤 캐릭터를 맡을 지 몰랐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캐릭터와 영상 모델링이 너무 예뻐서 바로 수락했다. 처음엔 내가 맡을 역할이 괴물인 줄 알았는데 모델링을 보고 잘 생겨서 흥미를 느꼈다. (웃음)
송하림 : 처음 프로모션 영상을 봤을 때 실제 게임 영상이라고 들어서 놀랐다. 색감과 모델링 등이 예쁘고 PC 게임처럼 퀄리티가 좋아서, 이런 좋은 작품에 들어가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 작업은 언제부터 어느 정도의 기간을 잡고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설명해달라.
김지율 : 1인 녹음을 하면 빠르고, 2인 이상 함께 녹음하면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퀄리티가 좋다. 아무래도 같이 작업하는 쪽이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보니 리액션이 자연스럽다. 혼자 작업하면 앞의 대사를 확인하고 이런 톤이겠구나 상상하며 작업해야 한다. 그랑사가의 경우 혼자 작업했다. 라스는 주인공이다 보니 대사량이 많아 스크립트 문서가 많이 쌓여 있었고, 작업은 한 달에 한 번 한 시간 정도 진행했다. 그래도 좀 더 욕심이 나서 아쉬웠던 부분은 시간을 들여 다시 녹음하기도 했다.
송하림 : 나는 세리아드 말고 다른 역할도 겸했는데, 세리아드는 캐릭터 특성 상 대사량이 적은 편이었고, 마을에 있는 소년이나 그랑웨폰, NPC 녹음도 했다. 그래서 내 목소리는 게임 구석구석에서 찾을 수 있다. 보통 녹음을 하기 전에 녹음 분량을 전달 받으며 그 후 스케줄을 잡는다. 그리고 녹음실에 가서 대본을 받고 현장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했을 거라고 상상하며 녹음하면 녹음실 밖에서 디렉터가 피드백을 주는 식으로 작업한다. 한 달에 한 번 가량 작업 기간에 맞춰서 하고, 추가 소스가 필요할 때는 중간에 추가로 작업하기도 한다.
● 성우 입장에서 본 엔픽셀과 그랑사가는 어떤 인상인지 궁금하다.
김지율 : 엔픽셀 분들은 캐릭터 하나 하나에 애정을 많이 갖고 있더라. 캐릭터 내에 인연도, 호감도 이런 시스템이 있는데 보통 모바일 게임에서는 이렇게까지 더빙 하지 않는다. 이렇게 캐릭터 하나 하나에 스토리를 만들어 풀 더빙을 한다는 건 앞으로도 이렇게 완성도 높은 콘텐츠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더 업그레이드 될 거라고 생각하며 즐겨주시면 좋겠다.
송하림 :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탄탄하게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성우 입장에서는 성우들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케어해 주시고 애정을 담아 캐스팅과 디렉팅을 해줬다. 디테일에 신경 쓴 만큼 작품에 대한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픽도 너무 예쁘고 화려하고 색감이 다채로워 즐길 거리가 많다.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도 스토리 보는 것이 재미있고 즐길 게 많아서 모처럼 즐겁게 플레이 하고 있다. 앞으로도 많이 기대가 된다.
● 세리아드와 라스 캐릭터를 연기한 소감은? 어려웠던 점이나 신경 썼던 점, 흥미로웠던 점,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김지율 : 라스는 힘 조절이 중요했다. 대사가 워낙 많아서 힘을 조절하지 않으면 캐릭터 매력이 사라진다. 처음에는 힘을 빼고 시작했는데 점차 감정적으로 변하는 구간들이 있다. 그 때마다 성장해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라스의 감정이 격렬해지는데 소리를 많이 질러야 해서 정말 힘들었다. 소리를 아껴서 지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또 느낌이 안 산다. 플레이어들이 내가 대충 소리 지르는 게 티가 날 텐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 텐션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다.
송하림 : 반대로 세리아드는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되는 캐릭터다. 녹음할 때 이모션 작업을 함께 하는데 다른 캐릭터들이 박수치고 활발하게 웃을 때도 세리아드는 활발하게 웃으면 안 된다. 세리아드의 모습은 활짝 웃고 있지만 감정은 많이 빼야 한다. 이처럼 절제에 절제를 하면서 표현하다 보니 고충이 많았다. 세리아드는 감정 절제를 조율하면서 다듬어진 캐릭터였다.
● 세리아드와 라스가 아닌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면 어느 캐릭터가 가장 매력적인지?
김지율 : 주인공 캐릭터도 너무 좋지만 장민혁 선배님이 연기한 ‘레온’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멋있다. 차분하면서도 강한 캐릭터, 시크하고 차갑지만 선의의 경쟁을 하는 그런 역할을 정말 좋아한다. 그런 캐릭터와 내 목소리가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중2병이 많으면 많을 수록 너무 좋다. 나 또한 그런 성격이다. (웃음)
송하림 : 나마리에 같은 섹시한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서 도전해보고 싶다. 큐이 같이 방방 뛰는 캐릭터는 그래도 어린이 애니메이션에서 경험할 수 있는데, 나마리에 같은 섹시한 캐릭터는 악당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 코로나19 이후 예전처럼 함께 모여 합을 맞추기가 힘들 것 같은데, 코로나19로 인해 녹음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김지율 : 5인 거리 두기가 계속 되었으니까... 녹음실 규모에 따라 적게는 혼자, 많게는 4명까지 작업했고 그래서 작업 시간이 더 걸린다. 코로나19 이후 작업 환경이 더 잘게 쪼개졌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혼자서 감정을 잡을 때는 조금 힘들 때가 있는데, 대사의 뉘앙스나 스크립트 옆의 힌트를 보며 이해하고 연기한다.
송하림 : 제한이 많이 생겼다. 단체 녹음은 팀을 나눠서 소수로 진행을 하거나 개별적으로 녹음을 한다. 하지만 게임은 원래 혼자 진행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변동이 없는 편이다. 혼자 녹음할 때는 원맨쇼를 한다는 생각으로 현장이나 상황 이미지를 그리면서 연기를 한다. 그래서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해당 캐릭터의 느낌을 살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지율 : 라그나데아의 기사단이 되어 우리의 왕국을 지켜주세요. 우리 같이 모험을 떠나요!
송하림 : 1년 동안 녹음을 했다. 정말 오래 기다렸다. 세리아드의 프로모션 영상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말하는데, 나도 같은 마음이다. 여러분을 오랜 시간 기다렸으니 앞으로도 긴 여정을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세리아드라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