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주가 만든 구단주 놀이, '프로야구 H3' 체험기
루리웹 편집부에는 두명의 야빠가 있다. 각각 한화팬, 엘지팬이다. 그렇다. 우리는 현실에서도 팀 뽑기를 말아먹고 근 십 몇 년을 고통받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개막과 함께 서로의 팀에 대한 욕과 비하를 남발하지만 결국 모두가 쓸쓸한 패배자일 뿐인 사람들이다 이거다.
현실 야구가 답답해서 내가 직접 한다!!
아무튼, 그런 현실 야구에서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이런저런 야구 게임들을 건들 때가 있었다. 자기 팀의 리즈시절을 추억하며 해당 년도 덱을 만들어서 굴리는 일은 야구 게임을 건드려 본 야구팬이라면 다 한 번쯤 있는 경험일거다. 하지만 이내 가상 세계에서도 비참한 현실을 아예 잊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어느 순간 깊은 현타와 함께 접어버리고 만다. 이번 2021시즌 개막과 함께 오픈한 ‘프로야구 H3’ 는 그 긴 휴식의 시간을 덮고 다시금 시도해 본 프로야구 게임이었다. 무려 진짜 프로야구 구단주가 만든(물론 진짜 직접 실무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구단주 놀이 게임이라니. 이 무슨 농담같은 일인가.
경기 장면을 모두 볼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스코어 보드를 자주 보게 될 것이다.
‘프로야구 H3’ 는 매니지먼트와 직접 플레이로 크게 양분된 야구 게임 중에서 매니지먼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로야구 매니저’ 의 개발사 엔트리브에서 프야매-H2 로 이어지는 계보를 이어 만든 게임이다. 그만큼 직접 경기에 개입할 방법은 없으며 선수단을 구성하고, 라인업을 짜고, 작전을 준비하는 등 철저히 매니지먼트에 집중했다.
SNS 고증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것이 아닌가...
게임의 핵심 콘텐츠는 단연 페넌트레이스다. 각 페넌트레이스 리그는 3.5일 단위로 총 144경기의 시즌 경기와 포스트시즌까지 치르게 되며 페넌트레이스는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 단위로 2~3 연전의 1라운드를 치른다. 경기 결과를 확인할 때는 스코어보드만 볼 수도 있고, 실제 경기를 모두 볼 수도 있고, 또는 승패 여부만 확인할 수도 있다.
리그 꼴찌 팀에게... 루징을 당했다고?
이 게임의 장점과 단점은 명확하다. 먼저 장점, 하루 한 번 뿐인 ‘프로야구’의 재미를 한시간마다 느낄 수 있다. 단점 또한 비슷하다. 많아야 하루 한 번 겪는 패배의 고통을 한시간마다 하루에 열두번은 더 겪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PTSD를 느낄 수 있다. 지금 이 체험기를 쓰는 순간에도 리그 2위인 팀으로 리그 9위에게 스윕패를 당해서 갑자기 숨이 안쉬어진다.
이런 고통 때문에 ‘프로야구 매니저’ 이후에 야구 게임을 안했던 거지만, 아무튼 매 시마다 PTSD 가 오는데도 이런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는 매력은 분명 있다. 3.5일 단위로 돌아가는 리그의 결과를 확인하고 머리를 굴리는 재미는 분명 현실에서 매일 프로야구 경기를 기다리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중간 점검을 한다.
막강한 클린업과 불안한 불펜이라니 이 무슨 롯데 자이언츠인가.
페넌트레이스를 진행하며 특정 3연전을 앞두고 상대와 전력을 분석하여 타선을 조정하거나, 또는 선발 순서를 바꾸거나, 또는 불펜을 조정하는 등의 변화는 물론이고 작전 카드, 승부 예측, 오늘의 카드 사용으로 일시적으로 전력을 조건부로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순위와 기록이 상세하게 남기 때문에 역시 야구다운 데이터를 보는 재미도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필자처럼 리그에서 팀 타율, 팀 방어율, 팀 득점, 팀 안타, 팀 탈삼진 1위를 하고도 팀 순위는 3위인 뭐 그런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정말 지독하게도 현실적이다. 망할 공놀이 같으니라고.
이 메인 콘텐츠인 페넌트레이스를 뒷받침 하는 것은 팀의 선수들, 라인업이고, 그리고 그 라인업을 구성하려면 좋은 선수들로 자리를 채워야 한다. 선수 카드는 다양한 강화 요소가 있으며, 스킬 블록, 개성, 특수 기술, 장비로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수들의 선발 및 성장을 담당하는 시스템이 바로 ‘콜업’ 과 ‘스킬 블록’, 그리고 ‘훈련’ 이다.
구단주 모델링 아무리봐도 택진이 형님
기본적으로 이 게임에서 선수를 얻는 방법은 이적을 제외하면 스카우트가 유일한데, 이 스카우트에서 콜업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고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스카우트 카드를 써서 선수를 하나씩 뽑을 때마다 2개의 콜업 카드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콜업은 각각 여러가지 기준을 통해 뽑는 선수 풀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타 선수로 폭을 좁히는 ‘우타’ 콜업 카드와 나눔 올스타(타이거즈, 이글스, 히어로즈, 트윈스, 다이노스)로 줄이는 ‘나눔’ 카드를 쓰게 되면, 이 두 카드 모두 적용에 성공했을 시 나눔 올스타 소속의 우타 선수만 나오는 식이다.
14 박병호라는 리그 최강최흉의 타자를 뽑아도
기쁘지 않고 화가 나는건 내가 LG팬이라서일까...?
또한 이 콜업 카드 적용이 대성공이 뜨게 되면 콜업 카드 등급에 따라 전체 능력치를 소폭 상승 시킨다. 주로 쓰게 되는 C~D 랭크 콜업 카드로 성장하는 능력치는 대체로 1~3 정도다. 즉, 더 좋은 콜업 카드를 사용하게 될수록 선수를 뽑는 시점에서부터 기본 능력치에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스카우트 카드와 중요한 콜업 카드는 아꼈다가 함께 써야만 하고, 이렇게 잘 뽑게 되면 그 순간부터 다른 선수 카드와는 기본 성장 베이스부터 다른 전력을 보유하게 되는 셈.
스킬 블록의 경우, 기본적으로 개성 시스템과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 선수 카드가 경기를 뛸수록 경험치를 얻어 스킬 블록 칸을 해제하게 되고, 홀수번째 블록 칸을 해제할 때마다 개성을 하나씩 얻는다. 대부분의 개성은 특정 방향으로 능력치를 올려 주지만 몇몇은 부정적인 효과를 같이 가진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스킬 블록 칸이 열리면 파이프라인 형태의 스킬 블록을 하나씩 끼워넣을 수 있는데, 각각의 스킬 블록은 능력치를 상승시켜주고, 무엇보다도 이 파이프라인 형태의 스킬 블록들을 제대로 연결시키면 그때마다 더욱 시너지를 얻어 능력치가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이처럼 다양한 성장 요소가 잘 맞물려 있는 점, 그리고 각각 다른 방법으로 성장하는 만큼 저마다 다른 재미 요소가 있다는 점, 그리고 특수 기술을 포함해도 성장 요소가 능력치 위주이기 때문에 ‘마구마구’ 의 하이점프캐치 같은 말도 안되는 경우가 없다는 점이 상당한 장점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모든 성장 요소의 단점은 단 하나로 통일된다. 바로 뽑기라는 점이다.
그만큼 이 모든 성장 요소가 바로 과금으로 직결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상점에서 저랭크 성장 재료들은 캐쉬가 아닌 인게임 머니로 팔고 있다는 것. BM 밸런스의 경우, 현재 EX급 선수 카드 6장(선호구단 1장 포함)을 11만원(4,000 골든볼)에 판매하고 있는데, 다른 가챠류 게임의 SSR 급과 비교해볼 때 아직은 나쁘지 않은 가격이 아닌가 싶다(필자의 머리는 이미 금이 가있다).
다만 과금 면에서 현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이적시장에 대한 불만이 있는데, 이적시장은 말그대로 위닝볼을 엄청나게 소모할 수도 있고, 또 요 며칠 점검 및 운영 불안정 관련 문제가 이적시장에서 자주 나왔기 때문에 불안감은 여전히 있다.
훈련 시스템은 확실한 명과 암이 있다. 일단 훈련 시스템은 각 팀, 각 년도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특정 년도 팀 덱을 강제하는 요소다. 반면에 각 팀 및 년도의 훈련 포인트가 별도로 돌아가기 때문에 혼성 덱을 짰을 경우 특정 분야로 특화시키는게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훈련 시스템은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팀 레벨 성장을 통한 포인트 확보와 각 년도 및 팀 별 주력 카드가 필요하다는 어마어마한 플레이타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적용될지는 지켜봐야할 요소다.
그리고 훈련 시스템의 경우 UI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한데, 특히 내가 어떤 년도 어떤 팀의 어떤 선수를 어떤 포지션에 쓰고 있는지 훈련 화면에서 보이는 상태에서 훈련 방향을 정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은 훈련 하기 전에 라인업을 보고 선수 년도와 팀을 외워서 훈련으로 들어가 조정해야 하는 뭐 그런 불편함이 있다.
그외의 선수 카드 성장 요소, 그리고 팀 라인업 강화 요소들은 전반적으로 스포츠라는 현실성을 해치지 않는 면에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준까지 잘 갖춰져 있다. 다만 주력 카드 하나를 잘 뽑아서 잘 키워 쓴다고 할 때 스카우트-콜업-스킬 블록-특수 기술-개성 뽑기 등등등 굉장히 많은 변수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과연 최종적으로 얼마나 깊이감이 있을지(즉,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 점은 좀 무섭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말이다.